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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우리땅한바퀴

3회 국내도보여행(영덕군 축산리 축산 초등학교) - 얼어 죽을 뻔 한 날

by 냥이왕국 2020. 5. 6.

 2013년 4월부터 약 40일간 걸었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티스토리로 이동 중이며, 맞춤법 등을 개선합니다.

  • 일시: 2013년 5월 1일 
  • 이동: 영덕 삼사해상공원 > 영덕군 축산리 축산 초등학교 26.39km
  • 누적: 74.46km
  • 비용: 17,530원
  • 합계: 35,780원

 새벽에 엄청난 한기를 느끼고 눈이 저절로 떠졌다. 밖은 어두웠고, 바람은 여전히 텐트를 강하게 흔들어 댔다. 몸 빈틉사이로 파고드는 한기에 저절로 이가 달달 거리고 손발이 떨렸다.

밖에서 노숙을 하는 행위 자체를 우습게 본것이다.

 몸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는 여름용 침낭 하나와  바람막이 자켓 하나만이 전부였는데, 여름이 오기엔 이른 4~5월의 밤바람은 매서웠다. 간이 온도계로 텐트 내부 온도를 확인했다 영상 12° 

 엎친데 덮친 겪으로 텐트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격해지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덮쳐왔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13만 원에 구매한 텐트는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줬기에 비가 세서 텐트가 젖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출발하기 전 일주일 간 날씨가 화창할 때를 골라 출발했다. 사람의 예측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알게 됐다. 

 덜덜 거리는 몸을 부둥켜 잡고 최대한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잠을 자면서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깊게 잠들 수 없었기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힘들게 잠이 들었지만 휴대폰 알람 시간보다도 먼저 일어났다. 추위에  온 몸이 굳었음에도 사지가 떨리고, 이가 뽑혀 나갈 것만 같다. '집에 돌아갈까?'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첫날 칠포 해수욕장에 자리 잡은 화장실이 정말 좋은 곳이었음을 실감했다. 얼린 몸을 녹이기 위해서 아침밥을 해 먹기 했다. 

 추운 날씨에 간편하고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라면을 해 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조심스레 텐트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빗발은 조금 줄어들었고 식사를 준비하는데 지장이 없었다. 간밤에 겪었던 추위는 의지를 꺾기에는 충분하였고 Welcome to 도보여행~!이라고 환영식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날씨를 보니 오늘 하루 종일 비가 내릴 것 같다. 든든하게 먹고 떠날 생각이라 라면에 누룽지 두 개를 넣고 같이 끓였다. 맛은 최악이었다. 국물이 다 쫄아들어 질퍽한 것이 영 맛이 별로다. 다음부턴 라면을 먼저 먹고 남은 국물에 누룽지를 먹기로 했다.  라면과 누룽지가 따로 놀아서 이도 저도 아닌 맛에 개밥 같았다. 결국 몇 수저 못 뜨고 변기통으로 처박아 버렸다. 

 밥을 먹고 나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머릿속은 이 미친 짓을 그만두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3일째인데 집 울타리 너머 밖 세상은 험난했다. 춥고 배고픔의 연속이다. 출발하기 전 도보여행은 배낭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 MP3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선율에 바람에 흥겨움, 그런 것들이었지만 현실에서 낭만이란 없다. 평소 차를 운전하다 보며 가끔 큰 배낭을 짊어지고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젠 조금은 알 것 같다.

단언컨대 그들도 나처럼 "계속 갈까 말까?" "대체 이걸 왜 하는 거지?" "다 짚어치우고 싶다"라는 구호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었던 것이다. 비속어를 쓰자면 "아 시 x 존 x 힘든데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같은 험한 말들도 쏟아 냈으리라!

아! 존 X 힘들다!

 비에 젖은 텐트와 물건들을 들고 근처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 배낭을 정리했다.  

 스포츠 타올로 물기를 머금은 최대한 텐트를 닦고, 짜고를 반복하며 물기를 털었다.  귀찮은 작업이지만 물기를 닦지 않으면 배낭이 무거워질 것 같다. 무게를 조금이나 줄이고자 타올로 열심히 닦았다. 짐이 많아서 인지 텐트를 정리하고 수많은 물품들을 다시 넣는 일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패킹을 하는 시간만 삼십 분 넘게 소요된다.

 이 짓을 매일 해야 한다는 점이 앞날을 더욱 고달프게 만들었다. 패킹 중 보슬보슬 내리는 비에 판초우의를 개시했다. 배낭에 비에 젖으면 물먹은 솜처럼 배낭이 더 무거워질 것을 알고 있고, 기껏 보낸 택배가 의미가 없으리라.

텐트를 친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자리를 정리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한 일을 안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충전해 둔 보조 배터리를 회수하러 화장실에 들렀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훔쳐가진 않았다. 

비가 내리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오르니 화단이 펼쳐져 있다. 걷다 보니 우거진 소나무길 위로 바다가 나타났고, 조금 더 걷자 삼사해상공원에 도착했다. 텐트를 펼쳤던 곳은 입구였고 이곳이 바로 삼사해상공원이었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답게 주변 곳곳에 여러 상가들이 밀집해있다.

 조형물 앞에서 쓰레기를 줍고 계시던 미화원 아저씨께 부탁 해 인증숏을  찍고는 정상 전망대로 향했다.

 정상에 도착해 보니 이곳은 예전 인간극장에 출연했던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것을 자랑하 듯 현수막과 광고판이 있다. 옆 가게는 가수 태진아 씨 친 동생집이라고 자랑스럽게 붙어있었다. 

힘들던 차 피식 - 하고는 미소가 지어졌다. 위에서 바라본 풍경이 사뭇 운치 있다.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마음을 추슬렀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풍경은 지친 마음을 달래주기에는 충분했다.  비가 많이 내려 풍경을 담지는 못했지만 가끔은 그 순간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넓게 트인 바다가 도로 바로 옆으로 펼쳐져 있고, 파도가 세게 칠 때면 바닷물이 기염을 토하듯 도로를 적시곤 했다. 넘어 바람은 시원하고 해가 없어 걷기엔 딱이다. 비만 조금 덜 내렸으면 했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다 잃을 때가 많다. 걷다 중간에 구멍가게가 하나 보여 들어갔다. 

주인아주머니께서 딱해 보이셨는지, 커피 한잔을 권했다. 평소라면 극구 사양했겠지만 길 위에서 철판을 까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간다. 따뜻한 자판기 커피 한 잔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염치없게 한 잔을 더 뽑아 먹고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올리며 다시 배낭을 짊어졌다. 

슈퍼에서 초코바 두 개를 구매했고, 걸으면서 먹었다. 단 음식이 몸에 들어가니 기운이 돈다.

꾸불꾸불한 바닷길을 걷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간간히 미역을 건지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보였고, 파도, 그 길을 따라 들어선  펜션 건물들이 아름답다. 

 동화 속에서나 볼법한 갖가지 모양과 여러 나라풍의 구조물은 눈을 즐겁게 했다. 운치에 걷다 보니 마음도 즐겁고, 즐거운 마음을 아는지 해가 떴다!

 해가 돋자 삽시간에 온도가 변했다. 판초우의를 걸치고 걷는 중이라 더웠다. 때마침 펜션 건물 앞에 위치한 의자가 눈에 들어와 쉬면서 판초우의를 벗으려고 했다.

 

 사건은 그때 일어났다.

 

 배낭을 멘 채로 판초를 벗으러 머리를 판초우의 목 부분 아래로 넣었을 때 불쑥 노란 물체가 쑥 하고 나타났다.

"헉 씨 X "  사람은 위기에 순간 본심이 나오는 법이다. 예상치도 못한 공간에서 조우한 두려움은 인간의 본능적 방어 기질을 나타나게 하는 법이고, 내 본능적 방어는 일단은 욕이었다.

 너무나도 놀라 헉-! 하고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생각해보라! 웃옷을 벗으려고 머리를 뱃속으로 넣었을 때 뭔가 나타난다면?! 공포영화 주온에서 침대 이불속에 나타난 아기 귀신을 보는 기분 이리라!

 노란 물체의 정체를 확인하고 이성을 찾을 때 까지는 시간은 조금 걸렸으나 익숙한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노란 물체의 정체는 이 녀석이었다.

하 이런 개 xx 정말 간 떨어질 뻔했다.

어디서 불쑥 나타나 판초우의 밑에서 기어 나오는 기겁할 만하다. 개 덩치도 엄청 큰 것이 머리가 허벅지까지 위치했다 자기 딴에는 반갑다고 꼬리 치면서 달려들었는데 무서운 외모와는 다르게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했지만 코끼리가 좋다고 애교를 부리면 무서운 것처럼, 그의? 의도를 알고 있음에도 무서워 뒷걸음을 쳤다.

할필  젖은 발로 내 몸에 타고 기어 올라서 옷에는 개 발자국 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주인은 무슨 생각인진 코끼리만 한 녀석을 묶지도 않고 풀어놨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반가움을 주체하지 못해서 계속 달려드는데, 쉴 수가 없다. 

나는 고양이가 좋단 말이다!

쉴려던 생각을 접고  판초우의를 접는 둥 마는 둥 배낭에 박아 넣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매쉬 소재의 러닝화 사이에 뽀작뽀작 물기가 요동친다.  발은 시리고 질퍽질퍽한 느낌이 영 꺼림칙하다다. 잘못하면 큰 물집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신발에 물이 들어가는 것을 피할 방법이 없다. 방수 기능이 좋은 신발을 신더라도 계속 내리는 비는 발목을 타고 흘러 어느새 발바닥이 흥건해진다. 차라리 잘 마르는 신발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몇 시간 정도를 걷자 강구항이 눈에 들어왔다. 대게의 고장이라 그런지 멀리서만 봐도 대게 요릿집이 수십 개가 펼쳐졌다.

 해파랑 길을 따라 걸었다. 고성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도보여행 구간이다. 어쩔 수 없이 한 두 번 국도를 걸어야 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바닷가 지역이라 구간구간 쉴 수 있는 마을 정자가 있었고 공용 화장실도 잘 비치되어 있어, 용변을 보거나 쉬어 갈 때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 계획은 영덕블루로드 구간을 따라 산길을 걸으려고 했으나 무거운 배낭을 핑계 삼아 반 정도 걷다, 포기하고는 정상적인 루트를 향해 걸었다.

 다시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쏟아졌다. 억수 같이 내리는 비에 자꾸만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머릿속을 맴돈다. 항상 이렇듯 부정적인 생각은 약해지기만을 기다렸다가 가장 안 좋을 때 약한 부분을 자꾸 파고만 든다. 생각을 떨치려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나는 강하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극복한다." 

 

보잘것없는 행위지만 마음속으로 외친 중얼거림이 어느새 입으로 번져 마치 구호처럼 습관적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판초를 뒤집어쓰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저 구호를 외치는 내 모습이 멀리서나마 병 X같이 느껴지지만 괜찮다. 청춘이다.

 주문을 외우자 신기하게 몸에 힘이 난다.

 바닷길을 접어 들어선 산길을 몇 시간 걷다 보니 허기가 진다. 금방 그칠 것 같던 빗방울은 차츰 굵어져서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것만 같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대국대학교 연수원이라는 곳이 보여 냅다 뛰었다. 잠시 비를 피할 생각이었다. 나를 발견한 경비아저씨께서 오시더니 여기서 취사는 안된다고 못을 박아 두었기에 그냥 쉬다가 비가 조금 잠잠해지면 출발할 생각이었다. 밥해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밥을 먹게 생겼나 보다.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워 있을 때, 고급 승용차를 타고 어떤 아주머니 세분과 아저씨 한 분이 내리더니 돗 자리를 펴고 그곳에서 밥을 지어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경비아저씨가 와서 이곳에서 취사를 하면 안 된다고 조심히 타일렀지만 대한민국 아주머니들의 말발에 못 이겨 끝내 허락하고 만다. 그리고는 미안한 지 내게 와서 말했다. 

"오늘만 취사해도 돼요" 아줌마들은 대단하다.  

 밥을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옆에서 먹고 있으면 배가 고파지는 법이다.  얼른 화장실로 가서 물을 받았다. 경비아저씨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건네셨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커피를 마셨다. 작은 호의들이 스스로 자처하는 고생에 의미를 세겨주는 것 같다. 

추울 땐 라면이 제일이다. 간편하고 저렴하고, 가볍고 라면은 최고의 여행 음식이다. 뜨뜻한 기운이 몸에 번지니 살 것 같다.

출발 전에 무려 30개나 가지고 온 블랙커피를 한잔 타 먹는다. 걷다가 중간, 중간 구매하면 되는데, 서른 개나 챙겨 온 나 스스로가 싫어진다. 쌀이랑 식량만 제하더라도 4kg 이상은 줄일 수 있을테니까.

카페인이 몸에 들어가니 정신이 또렷해진다.

커피를 마시다 보니 빗방울도 조금 약해져, 떠나기로 했다. 아직 걸어야 할 시간은 많이 남았고, 이 곳에서 숙박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덕 해맞이 공원에 도착했다. 화단과 공원이 아주 예쁘게 잘 꾸며져 있다. 정상에 들러 첫날 만났던  국비호 선배님과 문자를 주고받던 중, 정상 포장마차에서 자기 안부를 전해주라고 하셔서 정상 포장마차에 가서 맥주를 먹을까 생각하다 금액에 놀라 콜라로 바꿔 짚어 들고는 국비호 선배님 안부를 아주머니께 전해드렸다.

다만 긴가민가 하시는 것을 보니 그 정상 포차가 아니고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는 듯했다. 

 해맞이 공원을 조금 지나자 한적한 마을이 나타났는데 마을로 들어서자 원자력 발전소를 반대하는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와 마음이 심란했다.

  고민에 빠졌다. 도시 사람들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한적한 시골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지? 항상 이런 반대 시위는 도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소수가 피해를 보는 식이다.  아주 오래된 잘못된 관행 중 하나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다. 배르나르 배르배르의 신이라는 소설 중에 이런 문구가 있다.

 "다수가 옳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소수가 틀린 것은 아니다." 

에너지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큰 문제가 됐다. 몇 달 전에 일어난 한국전력공사의 어처구니없는 정전 조치가 그 심각성을 말해준다. 

  일부 개인이 사용하는 전기와 에너지의 양은 크지 않다. 대부분이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기가 전력 난을 일으킨다 그러그들은 전기료는 우리보다 저렴하게게 이용하고 전기를 절약하면 정부에서 돈까지 쥐어준다.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명목 하에 대기업의 편애만 들어주고 그 피해를 소수 힘없는 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지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미쳐가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의 경쟁력을 앞세워  GDP 수치에만 연연하다 보면 언젠가는 독이 되어 돌아오리라 확신한다. (2020년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지겹게나 구불 데고 언덕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길을지나 축산리에 도착하였다. 하루 종일 내린 비 때문에 체온이 많이 떨어졌다. 운 좋게 근처 목욕탕이 눈에 띄어 이곳에서 몸을 좀 풀려고 한다. 

 금액은 4,500원을 주고 목욕탕에 들어가 뜨뜻한 물에 몸을 좀 지지니 나른해졌다. 몸을 지지고 난 뒤 젖은 옷을 가지고 빨래를 하려 했는데, 주인아저씨께서 목욕탕에서는 빨래를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법이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셔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후 물기만 제거한 후 목욕탕을 나왔다. 

마을 근처에 텐트 칠만한 곳을 기웃거렸다.  근처 축산 초등학교에 들러보니 있는 정자를 발견하였다. 이곳에 텐트를 치면 밤에 비가 와도 별 걱정이 없겠다 싶었다.

 

사실 비보다는 추위가 걱정이다. 간밤에 겪은 한기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고 오늘은 입을 옷도 마땅치 않아 반바지를 입고 자야 하는데 마땅한 대응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새벽에 내린 비 때문에 텐트가 축축하다. 텐트를 일찍 펼쳤다. 조금이라도 말려 볼 생각에서다. 목욕탕에서 가지고 온 젖은 빨래를 널고 판쵸우 의도 말리고 짐도 정리했다. 물건이 하도 많아서 텐트를 설치하는 과정은 불과 10분이지만 정리하는 시간은 20분이 넘었다.

 텐트 바닥에 그라운드시트를 깔고 텐트 내부에 판초우의를 한 장 더 깔았다. 판초 위에 요가매트를  깔고 나니 찬 기운은 조금 줄어들었다, 다만 5월임에도 겨울의 그것과 다름없는지라 텐트 안과 밖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다. 오늘 밤만은 춥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 뿐이다. 이런 내 기대와는 다르게 온도계는 벌써 1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간밤에 떨었더 텐트 내부 온도보다 더 낮은 수치다. 

 텐트를 치고 나자  6시가 훌쩍 넘었다. 

 저녁밥을 해 먹기 위해 뭘 먹을까 생각을 하다 가지고 온 카레 분말이 생각이 났다. 카레로 정하고. 걸으면서 봤던 제법 큰 할인마트로 향했다.

 

카레에 고기를 넣어 먹고 싶지만 비용이 초과될 것 같아 저렴한 야채 (당근, 양파)로 합의를 봤다. 오렌지가 3,500원 정도로 저렴해서 장바구니에 담고 걸으면서 먹을 행동식을 몇 개 구매했다.

 

 

조리 방법은 별 것 없다. 끓는 물에 양파와 당근을 듬성듬성 썰다가 카레 분말을 넣어주면 괜찮은 한 끼가 완성이 된다. 생각보다 카레는 편리하다. 설거지할 때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만드는 과정은 라면만큼이나 간단해서 자주 해 먹었다. 

다만 가스버너가 한 개라 카레를 끓이고 밥을 또 해야만 했다. 

 밥을 짓는 동안 허기를 못 참고 오렌지를 한 개 까먹었다. 상큼한 과즙이 입안에서 달콤하게 퍼지자 메마른 샘에 물을 주듯 입안에 침이 돋았고, 거지처럼 연신 씹어댔다. 한 번 씹을 때마다 풍성한 과즙이 내 혀에 춤을 추는 듯하다.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밥은 왜 이렇게 늦게 되는지 기다리는 동안 오렌지를 6개나 먹었다.

 오렌지를 구매할 때 잠시 들었던 무게에 대한 고민은 부질없음을 느꼈다. 며칠 만에 맛 본 풍성한 과즙의 오렌지 맛은 상상초월 이상이다. 3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인스턴트 음식, 그 특유의 더부룩 함과 냄새에 거의 졸도할 지경이었ㄴㄴ데 풀 반찬만 먹어도 좋으니 평소 잘 먹지 않던 야채와 과일에 대한 욕구가 극에 달했다.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운동장에서  사람 그림자로 보이는 물체가 내쪽을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대충 학교 경비아저씨나 아니면 지나가는 운동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잠시 후 생각이 맞았음을 알게 됐다. 이곳을 관리하는 경비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공공기관이라 취사와 야영을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셨다. 나는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면서 정중히 부탁을 드렸다. 이 시간에 텐트를 접고 어디를 갈 것이며, 짐을 다시 정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져서다.

불쌍해 보이는 내 모습을 보자 못 이긴 척 다음 날 오전 7시까지는 나가는 것을 약속을 하는 것으로 숙박을 허락받았다.  후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디서 왔느냐부터 왜 하느냐의 질문에 걸쳐 한 10여 분간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외지인이라 수상함이 가시지 않으셨는 것 같다. 

안심을 시켜드리기 위해서 불안하시면 경찰서에 가서 신분확인을 받아도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그제야 안심이 되셨는지 괜찮다는 말과 함께 이야기 보를 터뜨렸다.

 웃긴 것이 아저씨께서는 대화를 하는 도중에 방귀를 대놓고 뀌셨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상황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경비 아저씨:"포항에서 왔어요? 어유 멀리서도 왔네요"

뿌우웅~~ 

나:"아 네, 뭐 그렇게 됐습니다."

뿌우웅~~

 

 그렇게 4~5 차례나 연신 방귀를 뀌어댔다. 처음에는 실수이겠거니 하고 생각을 했지만 몇 차례 지속되자 살짝 화가 났다. 아무리 자연현상이라지만 사람 면전 앞에다 대놓고 방귀를 연신 뀌고는, 냄새까지 났다. 숨을 참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하는데 이 단순한 짓거리 들이 여간 힘들었다. 할필 바람은 내 쪽으로 불었기에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었고 나는 제발 좀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최악의 상상으론 경비 아저씨의 방귀가 흘러 들어가 끓고 있는 카레에 들어가는 역겨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그렇게 1시간 같은 10여 분이 지나자 아저씨가 사라졌고 찝찝하지만 여전히 맛있는 냄새를 풍귀는 카레 앞에서 1초 정도의 망설임이 들었다.

 스토브에 불을 끄고는 카레를 한 숟갈 떠서 맛을 보았다. 향긋한 양파와 당근 특유의 냄새와 카레와 섞여서 아주 맛있는 카레가 완성되었다. 다시 거지처럼 폭풍흡입을 했다. 누군가 며칠 동안 내가 밥 먹는 모습을 촬영했으면 아프리카 TV먹방계의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밥은 다 먹고 카레는 반 정도 남겨서 다음 날 아침에 재탕해서 먹을 생각으로 남겨놨다.

텐트로 돌아와 발바닥을 살펴보니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직은 발가락에 애교 정도인지라 실과 바늘을 이용해서 응급처치를 했다. 

 응급 수술을 마치고 일기를 적고 전자책을 꺼내서 십여분 정도를 봤다. 집중을 하려 해도 비를 맞고 고생하며 걸은 터라 눈꺼풀이 자꾸만 감겼다. 5월은 봄이 아니라 겨울이다. 다시 한번 자연의 무서움을 알게 됐다. 휴대폰으로 날씨정보를 확인하니 다음 날에도 비가 내린다. 

무거운 눈 커플을 비비며 오늘도 하루를 버텨냈다.

다만 고생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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