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2013년 4월부터 약 40일간 걸었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티스토리로 이동 중이며, 그에 맞게 오탈자와 각색 맞춤법을 개정할 예정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훼손하지 않되, 현시대에 맞게 수정 중입니다. 일부 희괴한 문구는 필자가 글이라는 것을 처음 써봤던 사람인지라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 당시에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욕심의 무게
- 일시: 2013년 4월 29일
- 이동: (출) 포항죽도시장 > 포항 칠포 파인비치호텔 17.28km
- 누적: 17.28km
- 비용: 5,400원
- 합계: 5,400원
불안함으로 하루를 꼬박 지새우다 아침 7시에 일어났다. 경건한 마음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샤워를 했다. 누구나 그렇듯 오랫동안 어떠한 일을 계획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그 날이 오면 설레거나, 초조하거나, 두렵기도 하다. 불안함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눈을 뜨니 이젠 불안함을 확인할 시간이 다가왔다.
세 시간 정도만 눈을 붙인 상태라 앞으로 긴 길을 나서기엔 많이 피곤했지만 어떻게 보면 인생의 숙제 중 하나였던 이 일을 빨리 끝내야만 비루한 내 인생에도 진전이라는 것이 있을 것만 같았다.
출발하기 전에미리 정리한 배낭을 들어봤다. 묵직한 것이 내 어깨에 메었다. 엄마에게 잠깐의 작별인사를 마치고 인파를 뚫고 거리로 나섰다.
군 부사관 생활을 하면서 행군에는 일가견이 있었기에, 배낭 꾸리는 것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내 자신감은 배낭을 메고 출발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씨x' 이라는 욕지거리와 함께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도대체 뭘 넣었길래, 어깨가 이리도 아플까? 군에서 매던 군장과 비교했을 때도 훨씬 견고하고, 수납공간이 많은 브랜드 배낭인데도 어깨를 짓누를 까?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나 싶어, 배낭에 들어간 품목을 찍어둔 사진을 들여다 봤다.
식량 | 연료 | 침구 | 텐트용품 | 의류 | 편의용품 | 편의용품2 |
누룽지5 |
보조배터리1개 (10000mha) |
요가매트1 | 삼계절용 텐트1 | 긴 티셔츠3 | 랜턴1 | 세면도구 셋 |
라면2개 |
D사이즈 배터리8개 |
침낭1(하계용) | 그라운드 시트1 | 반팔셔츠3 |
A5사이즈 노트 기록용 노트 3 |
퐁퐁350g |
건조카레1 |
230g사이즈 버너연료4개 |
자충배게 | 빨래줄 | 긴바지 2개 | 가위 | 수세미 |
건조 미역국1 | 빨래집게 | 반바지2개 |
가스버너 바람막이 |
등산용 방석 | ||
스팸2 | 코펠세트 | 양말7개 | 축구공 | 축구공 펌프 | ||
쌀3KG | 스토브 | 팔토시2 | 카메라 삼각대 | 디지털 카메라 | ||
꽁치통조림2개 | 모자1 | 볼펜3개 | 아이팟 | |||
건조 된장국3팩 | 스포츠 타올1 | 응급키트 | 이어폰 2개 | |||
맥심커피30개 | 수건2장 | 설사약1 | 책 2권 | |||
쇠고기볶음고추장 튜브3개 100g 사이즈 | 판쵸우의1 | 감기약1 | 전자책1 | |||
소금,후추,설탕,고추가루, 허부맛 솔트, 돼지갈비양념 | 바람막이 자켓2 | 진통제1 | 머그컵 | |||
슬리퍼 | 비누 |
(7년이 지난 글을 옮기면서 다시보니 당시엔 멍청했던 것 같다...)
Total weight 23.5kg (보조배터리, 축구공, 삼각대를 제외한... 무게)
아무리 생각해도 전날 배낭을 잘 꾸렸고, 불필요한 물건은 없어 보였다. (당시엔...) 무식하게 많이 챙긴 짐들 대부분이 사실상 필요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계산에 착오가 있음이 분명했다. 행군은 그 훈련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에서 이틀이면' 끝난다는 것이고, 내가 가야 하는 길은 앞으로 한 달은 훌쩍 넘어야 하는 길이기에 불가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것들은 왜 넣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물건들이 더러 있었다. 아니 대부분이었고, 배낭의 무게만큼이나 내 욕심의 무게는 과했다.
'먼 길을 갈 때는 눈썹도 밀고 가라'는 옛 말의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하게 된 하루였다. 사실 출발한 지 삼십여분 정도는 군 생활하면서 고생했던 추억이 뭉클하게 떠올라 감상에 젖기도 했고, 8년 간의 망설였던 일을 지금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기에 무거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다만 거의 30kg에 육박하는 무게를 오롯이 두 어깨로 버틴다는 일을 쉬운 일이 아니었다. 1킬로는 고사하고 몇 백 미터를 겨우 가서 허리를 숙여 연거푸 거친 숨을 토해내길 여러 번 , 배낭의 무게는 막말로 개같이 무거웠다!
당장이라도 다시 집에 들어가, 무거운 것들을 조금 정리하고 나왔으면 하는 유혹이 있었지만 큰소리치며 호언장담하게 잘 다녀올 것이라고 이야기 한 지 세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쉬면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고를 반복하고 삼십 분 정도를 걸었다.
집을 나서면서 결심했던 것 중 하나는 여관방에 한 달을 지내더라도 그 기간 동안엔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필사의 각오였다.
동지를 만나다.
포항 시내를 벗어나 인적이 드물어지는 거리를 걸을 때 즈음 멀리서 비슷한 행색을 하고 있는 중년 한 분을 뵈었다. 그분은 나의 행색을 보시더니 '도보여행자' 냐고 물으셨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선배님의 성함은 국비호 이셨고, 나이는 50대라고 하셨다.
궁금한 마음에 "왜 걸으세요?"라고 물어봤다.
선배님도 나와 마찬가지로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인데, 지금에서야 시간이 돼서 한다고 하셨다. 고성에서 걸어오셨고 집을 떠나온 지는 11일 정도 되셨다고 했다.
선배님이나 나나 초보 수준의 여행가였다. 다만 선배님은 내 배낭을 보고는 많이 걱정을 하시는 듯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최대한 태연한 척했지만, 그 순간에도 배낭이 짓누르는 압박에 빨리 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도 위에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아 많은 시간은 할애하지 못했지만 대한민국 반대편에서 다시 만나자는 서로의 약속과 함께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어깨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선배님이 하는 말을 잘 듣지 못했다.
이 날의 인연으로 우리는 동지가 되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용기를 복 돋아주기도 했다. 반대의 길을 걷고 있지만 훗날 선배님과 다시 만나게 되는 기적이 이어졌고, 선배님 덕분에 도보여행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헤어짐은 언제나 아쉽지만,
방향이 다름을 알기에 마음으로만 잡을 뿐,
아쉬움을 참고 다시 향하다 보면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에
그리움 담아 한 발자국 다시...'
선배님과 헤어진 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더니, 이에 한바탕 되어 쏟아졌다. 시계를 보니 PM 1:30 밖에 되지 않았지만 몸이 걷기를 거부했기에 마음속으론 이곳에서 머물기로 결정했다.
칠포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펼쳤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 텐트를 구매하고 처음 펼쳐봤다. 될 대로 되겠지라는 특유의 낙천성은 훗날 미국 PCT(4300km)까지 이어졌다.
이쯤 되면 낙천적이게 아니라 그냥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인정해야겠다.
텐트를 치자마자 관리하는 어르신의 도움을 받아 바람이 없는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 바닷가라 바람이 많이 불어 고생을 하겠다 싶었지만 운이 좋게도 바람이 불지 않는 곳으로 텐트를 옮길 수 있었다. 화장실 바로 옆이지만 아직 개방하지 않아서 인적이 없고, 혼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 아늑하고 좋았다.
사실 이곳은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곳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바쁜 시간이라 그런지 통화가 되지 않았다. 후에 연락이 돼서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텐트를 옮기자마자 피로감이 몰려와 두 시간 정도 곯아떨어졌다.
눈을 뜨고 야생에서 첫 끼를 해결하려고 했다. 배가 고파서라기 보다는 배낭의 짐을 줄이기 위해서 먹는다는 표현이 더 옳다.
처음 치고는 훌륭한 식사가 만들어졌다. 통조림 한통의 무게는 무려 480g에 육박했기 때문에 걸으면서 제일 먼저 먹어치우자는 계획이었다. 코펠 연결을 하고 불을 붙이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세상에 처음 빛을 보기 위해 엄마의 뱃속에서 나온 아이처럼 내겐 처음이었다.
역시나 알아서 다 되는 것 같다.
꽁치 김치 통조림은 조리과정 필요 없이 통째로 넣고 끓이기만 하면 훌륭한 식사가 완성이 됐다. 편하기는 하나 무겁다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였다.
첫날 뼈저리게 느낀 점 중 하나는 식량은 1일 치 또는 걷는 중에 현지에서 조달해서 해결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걸어보니 대한민국 촌구석에도 농협마트가 있고, 편의점이 있어서, 음식을 못 구하는 일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도보여행을 하다 보면 100G이 1KG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한순간이 아니다. 국내 도보여행이라면 10kg 내외로 배낭을 꾸리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것들은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고, 배낭 무게가 가벼워야 낭만이니 이상이니 하는 꿈 꾸는 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엔 커피 한 잔을 타 먹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 곳에서 버너 바람막이를 사용하는 이유는 배낭 품목에 넣은 당위성을 위해서다.
친구가 퇴근하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축구공으로 리프팅을 좀 하고 평소라면 전혀 하지 않았을 팔 굽혀 펴기도 50개 정도를 하면서 먼 거리를 걷기 위한 체력을 늘려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배낭 무게만 줄이면 다 부질없는 짓들인데, 그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저녁 10시가 돼서 친구가 위로차 방문했다. 닭강정과 맥주를 사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가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에 나도 많은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엔 모르지만 어려울 때 찾아주는 친구가 하나쯤 있다면 나쁘지 않은 삶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시간 정도 맥주를 마신 후에
잘 다녀오라는 친구의 말과 함께 헤어졌다.
깜깜한 텐트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지, 어떤 것을 얻어갈지?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다행히도 고생한 어깨와 두 다리 때문에 쉽게 잠들 수 있었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 소풍 같은 하루지만 하루가 저물었다. 내일은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는 마음을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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