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부터 약 40일간 걸었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티스토리로 이동 중이며, 맞춤법 등을 개선합니다.
- 일시: 2013년 4월 30일
- 이동: 포항 칠포 파인비치호텔 > 영덕 삼사해상공원 30.79km
- 누적: 48.07km
- 비용: 12,850원
- 합계: 18,250원
집나오면 고생이라더니?!
잠들기 전 핸드폰 알람을 오전 6시로 맞춰뒀고, 알람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여섯시에 아직은 어두컴컴한 텐트속을 방문했다. 의식이 들자마자 악-! 하는 단발마와 함께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첫날 무식하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무리를 했던지라 당연한 결과였다.
다만 고통의 강도가 높아서 팔을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통증의 강도가 어찌나 쎈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여행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 정도이다.
아픈 어깨를 한참을 부둥켜 잡고, 최대한 살살 맛사지를 해줬다. 그렇게 십여분을 해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서 주섬주섬 배낭에서 진통제를 하나 꺼내들어 삼켰다.
진통제를 먹은 후 약기운이 몸에 돌자 움직임이 조금은 수월해졌다. 텐트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1초 옆에 위치한 화장실에가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아침 식사로는 전날 친구와 함께 먹다 남은 닭강정과 남은 꽁치찌개를 주섬주섬 먹었다. 처다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스스로 참 가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아프지만 밥은 맛있었다. 마파람에 게눈 감치듯 먹어 치워나갔다.
아침에 축구공을 이용해 굳은 몸을 풀겸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입에서는 곡소리가 터져나왔지만 겨우 참아가며 먼길 떠나는 몸에 기름칠을 하기 시작했다.
흐린 첫째 날과는 다르게 둘째 날은 날씨가 좋았다. 해는 적당하고 바람도 살살거려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걷기에는 최고의 날이 아닌가 싶다. 근육통은 여전했지만 한가지 다행인 점은 첫 날 오후 2시에 운행을 마감해서 그런지 컨디션은 제법 괜찮다.
으스러저가는 어깨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괜찮아 보였다.
가는 길에 가까운 우체국에 들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배낭의 무게가 너무나서 집으로 택배를 붙일 예정이다. 짐을 줄일 생각을 하니 여유가 생겨서인지 주변 풍경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에 접어들어 초록의 물감과 약간은 비릿한 향을 머금은 바닷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이제 진짜 야생이다!
배낭하나만 둘러메고 인적이 드문 시골길을 걷는 다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차로는 보지 못했던 느림의 풍경들은 시속 4km에 맞춰 수줍은 얼굴을 드러냈다.
지금 걷고있는 순간만은 느려져, 자연을, 낭만을 느낄 수 있다. 분명 느리지만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훌쩍 지나온 길을 보면 4km 의 속도는 느리지 않고, 한 걸음은 위대하다.
너무 빠르게만 지나오다보면 어떤 길을 걸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때가 많다.
'여장자체가 보상이다 by 스티브 잡스'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강태공들이 아침부터 입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남자가 취미로 낚시에 미치면 답이 없다는 소리를 어릴적부터 자주 들었는데, 조금은 알 것 같다. 평일 낮 아침임에도 손맛을 보러 많은 낚시꾼들이 보였다.
한시간 정도를 걷다보니 힘이 들어 공원에 들러 쉬었다. 출발 전 계획에선 50분 쉬고 10분 쉬는 것을 반복하는 패턴이었지만 지금은 20분 쉬고 20분 걷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평소 운동이라고는 거리가 먼 몸뚱어리인지라 무릎은 성장통을 겪는 것 마냥 시큼거려 가뜩이나 아픈 어깨에 무릎까지 말썽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걷는 중 어깨가 지랄같이 아파, 무릎 통증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배낭을 벗고 쉴 때면 어김없이 새로운 고통에 정신이 번쩍 뜨였다.
가지고 온 삼각대를 한번은 사용해 봐야 할 것 같아서 쉬는 시간마다 케이스를 꺼내서 사용했다. 아니 케이스를 왜 씌우고 다녔는지 7년이 지난 지금은 전혀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걷다, 쉬다를 반복하니 월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칠포에서 월포까지의 거리는 약 8km 정도로 일반적인 걷기 속도라면 2시간 정도면 도착할 거리였다. 불행히도 25kg에 육박하는 배낭과 함께한 난 세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삼각 김밥과 콜라로 점심을 때웠다. 오후가 넘어가자 햇볕이 매우 뜨겁다. 국내에서 도보여행을 많이 하다보면 편의점을 자주 찾게된다. 이럴때는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할인 서비스를 이용하면 최저 5% ~ 20% 까지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당장엔 몇 백원이라 얼마 안되는 돈 이지만 적은 돈이 모이면 밥 한끼 사먹을 만큼 절약이 되기도하다. 편의점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해 휴대폰에 설치한 지도앱을 들여다봤다.
우체국 위치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우체국에 도착하면 = 무게를 줄일 수 있다는 공식이 머릿속에 맴 돌았다. 이것은 중대한 결정이었다. 우체국에 도착해 집으로 보낼 품목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줄일 품목은 책 두권이다. 전자책을 들고가면서 책을 두권이나 들고가는 것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마 당시에 난 도보여행이 말 그대로 여행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여행도 많이 다녀 본 사람은 고생도 여행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철없던 시절이라 놀고 먹는게 여행의 전부라 생각했다.
스티브잡스가 읽었던 선심초심이라는 책인데, 책 첫페이지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정확하게 자기 역활을 한다면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 이 책은 책꽂이에 정확하게 꽂혀 있어야만 했다. 이 책이 그의 정신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지라 그의 사상이 궁금해서 여행을 하는 중에 명상을 하며 수련을 하고 싶었다.
이 날 나 스스로 얼마나 도보여행의 난이도를 우습게 생각했는지 깨달았다. 죽을 확률은 거의 없다지만 고생할 확률은 백퍼센트에 달하는데, 이 논리는 포탄이 날아드는 전쟁터에서 명상을 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아쉽지만 특별한 사람이 아닌지라 육체와 정신 두가지를 동시에 수행할 수 없는 보통 사람임을 인정했다. 필요없는 물건들을 박스에 넣자.
배낭 무게는 4kg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어서 추후에 택배를 한번 더 보내기도 했다.
짐을 붙이고 나오는 길은 가벼웠다. 기분만 가벼운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벼워졌기에 어깨를 짓누르는 하중이 많이 줄었다. 다만 많이 줄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배낭의 무게는 18kg 정도로 도보여행을 하는데 있어서는 많이 무거운 편이었지만 가벼워진 무게에 신이나서 처음으로 한 시간 이상을 쉬지도 않고 걸었다.
걷는 중에 마을 정자가 눈에 들어와 그리로 향했다. 길가에 펜션이 많았는데, 아침부터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발바닥에 물집이 조금 올라올 것 같은 기미가 보였다. 송진가루가 겹겹이 쌓인 정자에 누으니 노곤함이 몰려왔다. 졸음을 참지 못하고 삼십 분 정도 눈을 붙였다.
몸이 적응할 때 까지 하루 20km 정도만 걸을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20km가 짧다. 몸 상태가 올라온다면 오전 중으로 20km를 다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중간에 휴식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걷는 거리는 그날 컨디션에 따라 조절하기로 했다.
7번 국도에 들어서자 덤프트럭과 차들이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쌩쌩 달렸다. 여태까지 한적한 시골길 같은 곳만 걷다가 마주한 국도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도로 옆에 붙은 안전지대 1m 정도를 방패삼아 걷지만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런 길을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걷는 것은 죽으러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이 조금 있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 걷기로 마음 먹었다. 10km 이상의 거리를 지나야하는데, 두려움이 컸다. 해가 있을때 최대한 빠르게 지나가는 수 밖에 없다.
걸을수록 폭은 좁아져서 50cm의 공간만 허용하는 곳도 있었다.
드디어 포항을 벗어나서 영덕군에 입성했다. 영덕에서 부터는 블루로드라고 해안길이 시작되는데, 경치도 멋졌다. 한가지 드는 아쉬움은 왜 우리말을 두고 외래어로 '블루로드'라고 지은 것인지 아리송하다.
바위에 부숴지는 파도를 보고 있으니 몇 천년동안 이나 이어졌을 법한 고귀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풍경은 많이 바뀌었겠지만 먼 옛날 누군가도 지금의 자리에 서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한 걸음 내디딜때마다 하얀 포말을 잔뜩 머금은 바람이
소매자락을 타고 몸 곳곳에 바다의 이야기를 전해주듯 진하고 여운있게 퍼져나갔다.
그에 화답하 듯 두팔을 벌려 화답했다. '
여행을 떠나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일을 할 시간인데, 내 시간은 정지된 것처럼 세상을 향해 빗겨가고 있다. 아쉽게도 다시 국도에 들어섰고 지겨운 아스팔트 길을 걸은지 한참을 지나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삼사해상공원 정상에 텐트를 치려고했지만 30km 이상을 걸어온터라 1km를 걷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마침 위치한 곳에서 화장실이 멀지 않아 밥 해먹고, 씻기도 좋을 것 같다. 쉬면서 화장실을 이용해서 휴대폰을 충전했다. 한국이 좋은 점이 이런 점이 아닐까 싶다.
공공장소에도 콘센트 꽂을때가 많다.
화장실 바로 앞에는 풋살장이 위치해 있어, 저녁 밥을 먹은 후 몸을 풀러가기로 계획을 잡았다.
텐트에 누워 쉬면서 저녁 매뉴에 대한 고민을 했다. 물론 무거운 통조림을 처리할 예정이지만 꽁치 통조림을 제외하고 뻔데기 통조림도 있어서다.
운행을 하다보면 무거운 배낭을 열고 음식을 해먹는 일이 여간 귀찮고 힘든 일임을 알게됐다. 점심 정도는 간편한 음식으로 때워야할 것 같다.
텐트에 들어와서 일기를 적던 차 공차는 소리가 들려 얼른 텐트 밖으로 나가봤다. 어르신들 몇 분이 축구를 하고 계셨다. 지갑과 휴대폰과 중요한 물건을 챙긴후에 풋살장으로 갔다.
쭈뼛쭈뼛 관심을 가져주길 기다리면서 구경했다 어르신들은 집중하셨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존재를 알리기위해 공이 내 쪽으로 넘어오면 반대로 차주기도하면서 관심을 표명했고 마음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9명이서 공을 차고 있는데 왜 숫자를 맞출 생각을 안해?! 얼른 와서 같이 하자고 말을 해야지!!'
바램과는 다르게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를 하고 있었다. 연세가 어느정도 있으신 분들이라 그리 잘 차지는 못했지만 공이 차고 싶었다. 참다 못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 어르신 지켜보니 9명이서 공을 차고 계신데 제가 끼어도 될까요?"
당연히 승낙해줄 것이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예상치도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 지금 한명 오고 있어서 기다리는 중이라 안 될 것같아요"
이에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 내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 그 분 오실때 까지만이라도 끼어서 차면 안 될까요??"
집념의 승리였다
"콜!"
그렇게 한 30분 가량을 뛰어다녔다. 무거운 배낭을 벗어던지고 뛸 수 있다는 점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30km를 걸어온 터라 무리하게 많이 뛸수는 없어 페이스를 조절했다. 한 쿼터가 끝나자 팀원이와서 빠졌지만 새로운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평소에는 부끄러움 때문에 나서지 못했을 일일텐데, 먼저 나서서 원하고자하는 바를 이루었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집을 나온지 이틀만에 스스로가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게임을 마친 후 공용 화장실에 들어가서 팬티 바람으로 머리를 감고 스포츠 타올에 물을 적셔 박박 몸을 닦았다.
어설픈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밤이 찾아왔다. 해상공원의 야경은 멋졌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줬다. 마무리로 팔굽혀펴기를 50개 마친 후 텐트에 들어오니 저녁 8시가 다됐다.
긴장이 풀리자 어깨의 통증이 심해져 다시 한 번 진통제를 먹어야만 했다.
일기를 작성하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배가 고파져서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라면에 물을 받아 텐트로 복귀했다. 편의점에서 먹어도 괜찮지만 물을 붓고 텐트까지 돌아오면 라면이 익을 것 같아서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지만 시간이 남아 돌아서 별 의미는 없다.
라면을 먹던 중 텐트가 강하게 흔들렸다. 바다 근처라 밤이 되니 바람이 심하다.
밖으로 나와 지주팩과 끈을 이용해 텐트를 단단하게 죄였다.
잠이 잘 올 것 같지 않다.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에 텐트가 고장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부숴지거나 찢어질 정도로 텐트는 약하지 않았다.바람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도 꾸지 않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TRAVEL > 우리땅한바퀴' 카테고리의 다른 글
5회 이색적인 국내여행 -나홀로 국토대장정 우박내리는 길 (1) (0) | 2020.05.10 |
---|---|
4회 이색적인 국내여행 -나홀로 국토대장정 얼어죽을 뻔 하다. (0) | 2020.05.08 |
3회 국내도보여행(영덕군 축산리 축산 초등학교) - 얼어 죽을 뻔 한 날 (2) | 2020.05.06 |
1회 2013년 나홀로 국토대장정 - 8년의 망설임 (0) | 2020.05.01 |
2013년 4월 출발하기 전 일기(독서에 대한 단상) (0) | 2020.05.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