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부터 약 40일간 걸었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티스토리로 이동 중이며, 맞춤법 등을 개선합니다.
- 일시: 2013년 5월 5일
- 이동: 삼척시 원덕리 호산읍 호산 감리교회 > 강원도 삼척시내 49km(강행군)
- 누적: 222.99km
- 비용: 61,700원 (점심,맥주,모텔 숙박비, 치킨)
- 합계: 148,380원
사방이 유리로 막혀있어 따뜻함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추위는 막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예상과는 달리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해 준 호산리 초등학교에서의 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추위에 밤새 벌벌 떨어야만 했다.
극심한 회의감이 몰려온다. 대체,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보고 의심해봐도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괜한 옹졸한 자존심만 똘똘 앞세워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다. 잠을 자는동안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와 체온에서 발산하는 더운 공기가 만나 결로가 생겼다. 텐트 천정을 따라 맺힌 결로는 새벽 내내 이마 위로 뚝뚝 떨어지기까지 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강추위에 의지가 꺾일 것만 같다. 아침에 힘들게 눈을 떠, 텐트에서 나와 외피를 벗겨 물기가 털어내고바닥에다가 넓게 펼치고 마르기를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축구공을 가지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굳은 몸을 움직였다.
조금 지났을 때 교회 목사님의 안사람으로 보이시는 분이 오셔서 아침으로 드릴 것은 마땅치 않지만 컵라면이라도 드시겠냐는 질문에 얼른 네! 하고 대답했다.
잠시 후 여사님께서 컵라면 2개와 김치를 들고 오셨다. 배고플 것 같아 보여서 두개 가지고 왔으니, 혹시 모자라면 말씀하라는 따뜻한 말도 잊지 않으셨다. 아침부터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뭉클하다. 아직까지 세상은 살만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하루의 시작이다.
라면을 받고서 십분도 체 지나지 않아 두 개를 흡입했다. 몸이 꽁꽁 얼어 있었던 터라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니 몸속 세포가 살아나는 것만 같다. 고마운 마음에 간단한 쪽지를 하나 남기고는 피해가 될까 얼른 떠날 채비를 했다.
오전 7시 10분 교회에서 출발해서 삼척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새벽의 온도와는 다르게 날이 밝아오자 햇살은 어제의 한기를 잊은지 점점 강해졌다.
마침 버스 정류장이 눈에 보여 옷을 갈아 입기로 마음먹었다. 쉬는 중간 가까운 찜질방을 검색해봤다. 삼척시에 찜질 방한 곳을 발견했는데 거리가 45km 이상은 떨어져 있다.
삼척시로 가는 길목에는 작은 마을이 없어보여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만약 텐트에서 자게 된다면 간 밤에 겪었던 그 추위를 다시 한번 겪어야 하는데, 솔직히 감당할 자신이 없다. 마음을 굳게 먹고 오늘은 삼척시에 위치한 찜질방에 무조건 도착하리라 독하게 마음을 먹고, 강행군을 하기로 결정했다.
강행군을 다짐한 마음과는 달리 몇시간 못 걷고 퍼져 버렸다. 아침에 먹은 컵라면 연료가 벌써 오링이다. 칼로리를 섭취하기 위해 삼척시 장호 2리에 있는 구멍가게에 들렀다. 고 탄수화물인 빵 2개와 과자 1개를 고른 후 음료수로 손을 뻗었다가 이내 다시 내려놨다. 음료를 마시고 싶지만 경비 절약을 위해 타협하기로 했다.
마시는 것은 물로 충분하니깐 음료수는 사치라 되내이곤, 가게 주인 할머니께 부탁해서 물을 보급받았다. 가게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눈에 보여 한 자리 차지하고는 빵 2개와 오징어집을 거지처럼 먹어대기 시작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몇 분이 계셨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순간에 1,000 칼로리를 섭취하고 나니 피곤이 몰려왔다. 잠시 쉬었다가기로 마음먹고 쉬고 있을 무렵이었다.
동네 어르신들께서 정류장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삼삼오오 이동하고 계셨다. 워낙 때를 지어 가시는 터라 그냥 지켜보기도 뭐해서 지나가는 어르신들에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그중 할머니 몇 분이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포항에서 출발한 것과 현재까지의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할머니께서 대뜸 마을 잔치를 한다고 와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셨다. 고민이 됐지만 어르신이 권하는지라 1초의 긴 시간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곤,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태어나면서 염치라고는 간직하지 못했던 아이인지라, 들어서자마자 누구세요?를 연발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큰 소리로 배가 고파 밥 좀 얻어먹고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다들 흔쾌히 수락을 해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따뜻한 호의 덕분에 잠시나마 도보여행에을 하면서 고생했던 기억이 잊히는 순간이다. 밥을 먹는 동안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부족한 게 혹시 있으실까 봐 이것저것 더 먹으라고 많이도 챙겨주셨다. 밥을 다 먹고 나오는데, 먼길 가느라 힘들 텐데라며, 떡 한 봉지를 두둑이 챙겨주시는 모습에 다시 한번 가슴이 뭉클해졌다.
2012년 대선 덕분에 세대간의 갈등이 커졌다고들 하고, 언론은 자꾸 젊은 세대와 구 세대와의 싸움으로 부추기는 모습만 보여주며 프레임을 만든다. 여느 때 보다 갈등이 심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이곳 어르신들은 구 대통령의 향수를 기억하며 악질적인 프레임으로 덮어 씌운 보수주의자들이 아니라 내 눈에는 맘씨 좋은 동네 어르신들로만 보였다. 젊은 세대와 구 세대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가 필요하며 뭔가 정책적으로 대립이 아닌 연계가 필요해 보인다.
어르신들은 곡두 새벽부터 일어나 힘든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는게 하나의 낙이고 삶이다. 텔레비전에서 보도되는 언론의 진실성을 판단할 만큼 정보가 미치는 지역이 아닌지라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야 많이 접하는 인터넷과 휴대폰, 책들로 인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지식을 접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어르신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며 서로간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구세대들이 싫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결국은 우리도 늙는다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어르신 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좋은 음식과 좋은 말을 들으니 지치는 기색이 없다. 멋진 동해안 길을 따라 장관의 풍경이 펼쳐졌다. 에매랄드 빛깔 바다에 햇살이 비칠 때면 반짝반짝 하얀 별이 되어 나타난다. 해안길을 따라 길게 늘어진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보여 여자 친구와 같이 왔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만끽하며 조금 천천히 걸었다.
빨리 걷는 만큼 내 눈에서 사라질 것 같아 평소보다는 조금 느리게 걸었다.
바닷길을 벗어나 다시 지겹게 이어지는 산길이 나타났다. 열심히 걷고 또 걷는다. 좀 전에 먹은 푸짐한 식사 덕분에 힘이 절로난다. 기분으로는 50km 정도는 쉬지 않고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다 풍경을 보면 여유롭게 걸었던지라 시간이 촉박하다.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조금 더 속도를 올렸다. 속도를 올려봐야 거기서 거 기자만 말이다.
그때였다.
전방 모퉁이 너머 꽤 멀린 떨어진 곳서 도보여행자로 보이는 행색을 한 형상이 나타났다. 해파랑 길을 따라 걷고 있음이 틀림없다.
반가운 마음이 들어 만나기위해 열심히 뒤를 쫓아갔다. 그분은 아직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어찌 된 영문인지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추격전이 시작됐다. 오백미터 남짓한 거리였지만 걷는 속도가 원체 빨라 한 시간 삼십 분을 미친 듯이 따라 간 덕에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하고는 인사를 드렸다.
외모는 나이가 조금 드셨는지 모자 사이로 삐져나온 백발이 한가득했다. 남성분이셨고, 부산에 사는 사람이며 휴가 기간 때마다 가끔 해파랑 길을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기대했던 도보 여행자가 아닌지라 조금 실망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대화를 몇 번 나누다보니, 그분께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별로 원치 않는 눈치 인지라 간단히 이야기를 마치고는 그분이 걷는 길과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도보여행을 하면서 같은 여행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첫날, 선배님과의 만남이 여행 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다시 한번 우연한 만남이 주는 소중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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