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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퍼시픽크레스트트레일

6회 PCT 트레킹 미국여행 (영화 와일드) 4,300km 목마르다 탈수!

by 냥이왕국 2020. 5. 16.

 귀에 이어폰을 걸고 걷는 중 뒤에서 인기척이 나서 돌아봤다.  패션감각이 별로인 듯한 백발의 노 하이커가 인상 좋은 모습을 풍겼다. 딱 봐도 초보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보였는데, 작년에 아팔란치아 트레일을  완주했다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AT: 대략 3,400KM)

 자랑스럽게 백팩 뒤에 붙어있는 아팔란치아 패치를 보여줬다. 장거리 하이킹을 완주한 것 치고는 배낭이 굉장히 무거워 보였다. 특이한 것은 우산이다. 비도 오지 않는데, 왜 우산을 들고 다니는지 의문이다.

K팀은 아팔란치아 트레일을 종주했다 말에 부랴부랴 인터뷰를 하기위해 카메라를 꺼냈다. 촬영 때문에 엄청 힘들었다. 보다시피 그늘 한 점 없는 곳에서 1시 간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열 번도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담배를 벅벅 피우기 시작했다.

 PCT에서 담배를 끊어야 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촬영팀이 가버린 후에 홀로 산속을 걸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담배 피우는 것 빼고는 별다른 재미가 없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담배를 피우고 난 뒤 뒷처리는 확실하게 처리했다. 담뱃불을 끌 때도 물을 이용해 확실히 처리 후에 비닐백을 이용해 꽁초를 챙겨 다녔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후 2시가 다 돼서야 출발하기 전 지원팀과 약속했던 보급지에 도착했다. 

보급지에 도착해 보급팀과 연락을 해보려 전화기와 무전을 이용해 시도 해봤지만 도통 연락이 닿지 않는다.  예정대로라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텐데, 도통 나타 날 생각이 없다. 정오가 지나서인지 태양은 정수리 바로 위에 떠있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차오른다. 

비유하자면 한국에서 한 여름에 하이킹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때만 해도 사막구간이 어딘지도 몰랐지만 알고 보니 남부 캘리포니아 전부가 사막지역에 속한다. 캘리포니아라는 곳이 지역적 특성상 비가 잘 오지 않아 항상 건조하고 더욱 지역이다. 

 촬영팀을 기다리면서 물을 체크했다. 어림잡아 500ml 정도가 남아있다.  물 보급지까지의 거리는 8 km 정도가 남았다. 출발해 현재까지 누적된 거리는 약 13km 정도다.

 혼자왔다면 둘째 날은 여기까지만 걷고 서서히 적응기간을 가지리라 생각했지만 동행해서 움직이니 페이스 조절을 할 수가 없다. PCT에서 두 달이 지나서는 체력이 월등해져 촬영팀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은 불가능했다. 출발 초기에는 몸도 거구이고 촬영팀 대부분이 운동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덧붙여 촬영장비 렌즈를 추가해서 들고 가야하니 사람 환장할 노릇이다. 렌즈 무게는 약 5kg 정도 된다. 5kg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지도 모르겠지만 안 가져가도 되는 것을 들고 다닌다면 그 짜증은 배가 된다. 

 담배를 피울까 생각하다 그만 두기로 했다. 물은 500ml가 남았고, 이 물을 이용해 혼자만이 아닌 세 명이서 나눠 마셔야 할 생각을 하니 담배를 피우는 일은 갈증을 더 부추기는 일이다. 

 한참을 기다리다 보급팀과 무전 연락이 됐다. 지금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보급팀이 온다는 소리에 남은 물을 세 명이서 나눠 마시며 담배도 맛있게 피우고 여유 있게 기다렸다.  여전히 날씨는 더웠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물과 시원한 맥주를 들고 온다는 소식에 마음이 설렌다.

삼십여분이 지나서 다시 무전이 왔다. 

 가는 중간에 길이 막혀 더 이상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물을 보급 받으려면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서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 한다.  미친 짓이다. 남은 물은 없고, 물 포인트까지는 8km 정도 남았지만 문제는 내가 8Km를 걸을 힘이 없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같은 상황이었다.

결정을 해야만 했다. 돌아간다 하더라도 12km정도를 Back 해야 하고  8km 물 보급지에 물이 있을지 없을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곳에서 물을 보급받을 수 없다면, 15km 정도를 더 걸어야 마을로 탈출할 수가 있었다.

뒤보다는 앞이 낫다 싶어 앞으로 향했다.  오늘 촬영은 하지 않기로 하고, 각자의 페이스대로 걷기로 했다. 서로가 서로를 챙길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제일 뒤로 처져서 천천히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이 정말 죽을 만이다. 몸에 수분이 없어 조금의 탈수 증상이 왔고 입은 쩍쩍 말라서 침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다. 

걷는 중간에 많은 하이커들이 지나쳤지만, 당시 영어실력으로 물을 달라고 하기도 힘들고, 그들 또한 물이 없을텐데 말을 도와 달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들었다. 걷는 중간 당이 떨어져 손 다리가 벌벌 떨린다. 

PCT라는 길은 적응기간을 사람이 적응을 하게끔 처음에는 완만하다가 조금씩 코스가 험난 해 지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힘들다가 갈수록 더럽게 힘들어지는 곳이 PCT다. 

 국내 도보여행을 해봤지만 평평한 도로를 걷는 것과 산길을 걷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한발,한발 내딛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휴대폰도 잘 시그널도 잡히지 않는 곳이라 탈출할 방법도 없고, 작은 행동의 미스로 목숨을 잃을 수가 있는 곳이다.

'와 이러다가 정말 뒤지겠네!!'

배낭의 무게는 카메라 렌즈 덕분에 20kg를 초과했다. 배낭이 무거운 것은 식량구성을 어떻게 할지 몰라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많은 식량을 챙겨갔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미숙했고 준비가 체 되지 않은 체 PCT에 온 것이다. 이미 후회해도 소용없다. 만약 시간을 다시 돌린다 하더라도 준비는 미숙할 것임을 알고 있기에 앞으로의 앞날을 생각해봤다. 43,00km 6개월... 이 짓을 진짜 6개월 동안 해야 하는데 공포감이 몰려왔다.

거의 반쯤 죽은 상태로 8km 물 보급지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면서 촬영 준비를 끝낸, 촬영팀 카메라가 나를 주시하는게 보였다. 아 씹 x.. 뒤지겠는데 다시 촬영인가 보다 갈증이 너무 심하다.

남아있는 힘을 다 소진해, 도착한 물 보급지에는 이미 많은 하이커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이곳, 저곳 돌아봤지만 있어야 할 물은 보이지 않는다. 다급한 마음에 더듬더듬 거리는 소리로 주변 하이커들에게 물어봤다. 

"익스 큐즈미?! (실례함) 웨얼 이즈 워터?(물 어딨냐?)" 

질문을 들은 하이커들이 블라블라 답변을 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그 중 가장 예쁜 누나한테 다시 되물었다. 예쁜이 누나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지만,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이야기 중 결정적인 한 마디는 알아들었다. 

"Dry"

"뭐?" 

드라이라면 그 머리를 말릴때 쓰는 그 드라이기? 맞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운이 좋게도 촬영팀이 미리 도착해 데이 하이커들(반나절 코스로 하이킹을 하는)에게 물을 조금 빌렸고, 카메라 앞에서 정말 리얼함 백 프로를 보이며 작은 물병 하나를 벌컥, 벌컥 원샷했다. 

"아 십! 살 것 같다! " 

운이 좋게도 데이 하이커들에게 물을 1리터 정도를 추가로 얻어 당장의 위기는 넘겼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먼 타지 땅에서 도움을 받아보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나눔과 봉사를 왜 해야하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별 볼일 없는 것들의 조그만 나눔이 남에게는 큰 은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그늘을 찾아 잠깐 누웠다. 물은 없었지만 그늘은 있었다. 앞으로의 상황이 걱정이 된다. 잠시 숨을 돌리며 늦은 점심 식사를 해결 하기로 했다.

 둘째 날 부터 안일함의 결과는 거의 빈사 직전까지 나를 몰고 갔다. 위기가 다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내게는 물 1리터가 남아 있다. 이제는 이 물을 가지고 15km 정도 떨어진 첫 번째 마을에 도착해야 하는데 물이 부족하다. 앞으로의 앞 날을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일은 다른 곳에서 삐걱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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