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날아 오를것 만 같던 비행기가 멈췄다. 굳은 다리를 이끌고 힘들게 미국 땅에 첫 발자국을 힘차게 뻗었다. 첫 걸음의 의미는 크다. 이곳에 첫 걸음을 딛기까지 일련의 고생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쉽게 온 사람은 없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무척이나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진 일 중에 하나다.
PCT를 도전하기에 앞서 간단한 목표를 한 가지를 세웠다.
조금 가벼울 목표일지도 모르겠지만 '체중감량'이다. 사람은 게으르고, 게으른 동물이라 한번 그 맛을 들이면 한 없이 대책이 없다. 하루하루 방치한 채 지내다보니 어느새 80KG 을 뚫고 83, 85KG 을 돌파하더니 90Kg 에 육박했다.
이러다간 곧 0.1톤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먼저 반성하지만 일상속에서 무의식 적으로 마주치는 보통을 넘는 육중한 사람들을 평가하곤 했다. 이제는 평가의 주체에서 평가받는 자로 탈바꿈 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미 몇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몇 달전 친구가 진지하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냥이야 친구라서 이런 말은 안 할려고 했는데, 살좀 빼라 돼지같다"
보통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충격을 받아 하루 아침에 운동을 한다던지 했을텐데, 이미 정신까지 살이 쩌버린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되도 않는 개똥철학을 씨부렁 되며, 겉 모습보단 내면이 중요하다 설파 했다.
물론 알고 있었다.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단 걸 말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도무지 살을 빼는 과정이 불가능에 느껴졌다. 애초에 쩌본적이 없는 사람은 살을 빼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반 강제적으로 4300km 를 걷는다면 80kg 밑으로 다이어트가 될 것 같았다.
정말 별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내 나이가 이 십대라면 열정이니 도전이니 하는 거창한 이유를 가져다 붙이겠지만 난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서른 아니던가!
뭐 사실 그렇다, 내 돈 내고 여행하는 데 남들에게 갖다붙일 의미가 필요하다는게 괴리감이 느껴진다. 결국은 현실 도피성 같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도전 ?! 열정?! 도전이라는 단어는 성공을 포함하는 동시에 실패라는 것도 포함이 된다. 성공했을 경우엔 모두 문제가 없지만 실패했을 경우 그 타격은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젠 그만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조금 씩 먹어가니 헛 지식만 쌓여 으레 판단하기 일수다. 모르겠다. 아무래도 생각과 사고가 조금씩 꼰대가 되는 것 같다.
입국 심사 대기줄에서 내 순서가 다가오자 식은 땀이 흘렀다. 당시 내 영어 실력은 정말 병신xx였으니, 뭐라 묻는다면 의미를 전혀 파악할 수 없음이 뻔했다. 과거로 돌아가 영어 공부를 조금이라도 할 것이라는 후회가 들었지만, 사실 그 몇 개월 배웠다고 안되는 영어가 된다면 대한민국에 영어 못하는 사람은 없을테니 스스로를 위로했다.
놀랍게도 내 영어수준은 초등학생 수준에도 못 따라갔다. 간혹 사람들에게 "영어 잘 하세요?" 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들은 늘 쑥스러워 하며, 초등학생 수준 정도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런데 대부분 그 초등학생 수준이라는 게 원어민 초등학생 수준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등학생 수준이라는 그들이 저렇게도 영어를 잘 하는데, 나는 배워도 소용 없겠다 싶어 일찌감치 포기를 해버렸다.
해버렸다 다행히 염려했던 출입국 심사는 같이 동행한 PD님과 같은 줄에 있어서 'ME TOO' 한 마디로 쉽게 통과가 됐다. 이렇게까지 트라우마가 된 것은 미국비자 인터뷰에서 한번 떨어지고 나서부터 이민국 사람과의 대화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실은 영어보다 가방 오른 쪽 포켓에 자립잡고 있는 담배를 걸릴까 봐여서다. 면세 제한이 두 보루였지만, 나는 미국 담배가 비싸다는 소문에 다섯 보루를 챙겨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걸린다면 "I don't know" 아돈 노를 연발 할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다섯보루의 형제들과 별 탈 없이 미국 로스엔젤리스에 도착했다.
미국 땅을 무사히 밟자, 한달 전 비자 거절을 줬던 필리핀계 여성 영사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씨브랄 x
안드로이드 화법으로 "당쉰니 미쿡게 콰야할 이율모르겠슴미다."라며 내게 치욕을 줬던 그 아줌마에게 달려가서 자랑하고 싶은 맘이 간절하다.
아직까진 4,300km 를 걸어야 한다는 일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공항에 도착하자 현지 여행사를 운행하는 대표님이 픽업을 왔다.
시차적응의 문제로 첫 날 일정은 간단하게 미팅을 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미팅 중간에 PD님이 혹시 계획표라던지 운행 일정이 있는지 물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난 일정은 커녕 샌디에고로 어떻게 가는지 그리고 거기서 PCT로 어떻게 이동하는지 조차 몰랐다. 물론 혼자 왔다면 내가 찾아보며 계획을 만들었겠지만 따라가는 입장이다보니 알아서 해 주겠지 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이다.
일단 가면 다 해결 된다는 무대뽀적인 생각과 더불어서 말이다...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이 옳았지만, 약간의 PCT 맵 어플, 텐트 같으 것들을 한 번이라도 설치를 해보고는 왔어야만 했다. 몇 년전 국토대장정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 준비성은 여전히 바닥을 맴돌았다. PCT 관련 서적을 구매한 다 하더라도 모두 영어서적인지라 알아 먹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미팅이 끝나고서야 드디어 PCT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2~3시간의 검색 결과 샌디에고에서 CAMPO 그리고 레이크 라구나 라고 하는 캠프사이트 까지 2~3 일 정도가 걸리는 코스가 첫 번째였다.
개인적으로 계획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여행에 있어서는 더 그렇다. 개인적인 견해로 여행은 '비움'과 '낯선 조우'라 생각한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낯섬에서 느껴지는 마주침이야 말로 매일 접하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해준다고 믿는다. 이미 그곳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편견을 가질 것이란게 내 철학적 소견이다.
그래서 물품 구매와 미국에 가는 것 외에는 어떠한 계획을 만들지 않았다.
오롯이 낯섬과 비움이라는 핑계로 헛소리를 해본다.
사실은 귀찮았다.
간단한 미팅을 끝낸 후 근처 맥시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대부분 처음 보는 분들이라 써먹써먹 하다. 촬영팀의 구성은 PD 한분과 카메라 감독님 두 분, 현지 코디 1~2명 그리고 지원조 1명으로 구성이 됐다. 여기서 반은 나를 따라다니고 나머지 반은 니콜라라고 하는 크로아티아 친구를 따라 간다고 했다.
대부분 PCT에 오는 사람들 자체가 이미 보통이상의 비범한 정신을 가졌거나 반쯤 미쳤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는 것은 걷자마자 알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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